(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 의원이 공개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도에 소득세 등 국세를 체납한 인원은 84만9700명이었으며, 총 체납액은 11조 4536억 원이었다. 이중 10억 원 이상의 세금을 내지 않은 소위 고액상습체납자 숫자는 740명이었으며, 이들 740명이 체납한 액수는 무려 2조 1200억원으로 1인당 평균 29억원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은 우리 사회의 기본 상식이다. 세금은 밉거나 싫다고 이리저리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액수가 얼마이건 헌법상 의무인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며, 재산 은닉이나 잠적 등 양심 불량형 체납은 생계형 체납에 비해 높은 강도의 제재가 따라야 함은 당연한 일 일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는 2004년부터 고액체납자의 ‘인적사항’을 대중에게 알리는 망신주기 식 '명단공개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공개된 명단의 파급력이 그다지 크지 않아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명단 공개에 따른 ‘창피’ 쯤이야 감수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급기야 지난해부터 최대 30일 유치장에 가두겠다는 인신구속형 '고액상습체납자 감치체도'까지 도입해 시행하고 있으나 과잉금지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는 논란을 의식한 국세청과 검찰의 신중한 접근으로 감치된 고액체납자는 아직 한명도 없는 등 이렇다 할 반전을 이끌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명단공개라는 심리전’이나 ‘감치제도라는 인신구금 전략’, ‘다자 간 조세행정 공조협약’ 등 그 어떤 정책이나 장치도 고액상습체납자 해소에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국세청은 올해도 고액체납자의 이름은 물론 나이·직업·주소까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현장 수색 등 고강도 조사에 나서고 있으나 꼭꼭 숨어버린 그들과 이리저리 은닉한 재산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들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는 확연하나 인력과 그들을 쫓는 국세청의 추적 및 탐지 역량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은 초보에 머물러 있는 듯해 안타깝다. ‘고액상습체납자’나 ‘고액체납자’가 재산을 은닉하거나 잠적하는 그 자체도 매우 심각한 일이지만, 그보다 정부가 이를 제압할 실효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관행과 선례만 답습하고 있다는데 더 큰 실망과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이런 경우를 두고 ‘백년하청’이라 하지 않나 싶다.
그럼 외국의 경우 고액상습체납자와 그들이 숨겨둔 재산을 어떻게 찾아내고 있을까?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대개의 선진국에서는 고액상습체납자의 소재나 재산 은닉처를 알아내는 일 대부분을 사설탐정과 도급 형태의 탐지계약을 통해 은밀히 알아내고 있다. 이는 필자의 주장이 아니라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실용주의 발상이 징수 업무에 접목된 배경은 무얼까요? “‘과세’는 국가만이 할 수 있는 ‘법정주의’에 입각해야 하지만, ‘징수’는 효율에 방점을 두는 ‘행정 편의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정부 차원의 인식과, ‘탐지업무’에 관한한 세무공무원의 수를 늘려 추적조사요원으로 활용하는 것보다 탐정들에게 맡기거나 협업하는 것이 훨씬 저비용·고효율임을 일찍 깨달은 관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국민일보(2015.9.20)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예금보험공사도 2007년부터 2015년까지 해외에서 해외탐정을 140여회 고용해 환화로 약 689억원의 은닉자산을 찾아냈다고 한다. 이중 바로 회수된 금액은 발견된 은닉자산의 23%에 해당하는 약 161억원이었는데 탐정에게 지급된 고용 수수료는 회수금액 대비 0.5% 수준인 약 8900만원에 불과했다. 이역만리에서 8900만원으로 161억을 건진 셈이라 할까요? 이 얼마나 수지맞는 성과인가? 탐정의 유용성이 실증적으로 평가되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 시기에 국내에서는 ‘경찰과 변호사가 있는데 탐정이 왜 필요하냐’하는 좀 창피스런 논쟁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합당한 탐정업’이 존재하고 있다. ‘개별법과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탐정업무는 당장이라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2018년도 헌법재판소 판시와 2020년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동법 제15조에서 정한 ‘신용정보회사 등’이 아닌 일반인은 ‘탐정호칭사용’이 가능해 진 것 등이 그 존립의 토대이자 직업화의 근거이며, 현재 8.000여명이 창업·겸업의 형태로 탐정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를 두고 우리는 탐정업이 ‘비 범죄화’됐다고 말하며, ‘비 범죄화’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금지의 해제’ 또는 ‘합법화’로 설명되기도 한다. 일부에서 말하는 탐정업 ‘법제화’라는 말는 이미 합법화된 지금의 탐정업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육성 관리할 법(가칭 탐정법)을 만들자는 것으로, 이는 탐정업 직업화에 있어 선택일 뿐 필수가 아니다. 모든 직업이 법제화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모든 직업을 법제화할 필요도 없다는 측면에서 법제화는 탐정업 직업화의 관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쯤에서 윤석열 대통령님과 김창기 국세청장께 간절히 제안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국세청도 선진국처럼 잠적한 고액상습체납자의 소재파악이나 재산은닉처 탐지업무를 탐정과 협업하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국세징수법에 따라 공개되는 명단을 기초로 진행되는 업무라는 점에서 새로이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일도 아니고, 우리라고 안 될리도 못 할리도 없는 일이라 본다.
협업 대상 업체 선정은 사업자 등록이 된 업체 가운데 국세청의 자체 기준으로 선정하는 방식과 권위 있는 탐정협회나 관련 단체의 추천 또는 공모로 선정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며, 탐정의 탐지업무 수수료는 외국의 예로 보아 성과급제를 검토해 볼 수도 있으리라 본다. 윤석열 정부와 국세청의 진지한 검토와 실용적·혁신적 결단을 기대한다.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K탐정단 단장).